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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30 향긋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필자는 커피를 즐기는 편이다. 하루에 서너 잔은 보통이고 많이 마시는 날에는 대여섯 잔까지 마시기도 한다. 어떨 때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속이 좀 쓰리기도 하기 때문에, 좀 적게 마셔야지 하면서도 막상 커피를 즐기는 버릇을 없앨 수가 없다. 날씨가 좋은 날은 날씨가 좋아서 한 잔, 기분이 좀 꿀꿀한 날은 또 그래서 한 잔, 이러니 커피 중독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또 마시곤 한다.

사실 커피의 나쁜 점은 많이 알려져 왔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교감신경이 활성화 되면서, 가슴이 많이 뛰는 부정맥이 올 소지가 많다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심장 발작을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다고도 이야기 되어 왔다. 또한 위 점막을 많이 자극하여, 위궤양 등의 발생빈도가 올라간다고 하기도 하고, 숙면을방해하여 몸이 피로해지고 불안증 등이 잘 온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커피의 나쁜 점'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매우 부족한 편이다. 문헌을 면밀히 고찰해 보면 보통 단기간의 커피 섭취량과 주관적 증상과의 관계를 기술한 내용들이 많고 제대로 체계화된 대규모, 장기간의 역학조사를 거쳐서 나온 결론은 별로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끔은 커피의 좋은 점도 심심치 않게 의학 잡지에 기술이 되어오곤 했다. 당뇨발생 억제효과, 심장병 예방 효과도 발표된 적이 있고, 심지어는 일부 암의 발생 억제 효과도 기술 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도착한 최신의학 잡지를 보니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질 좋은 소식이 있어 눈이 번쩍 띄었다. 미국심장협회에서 발행하는 최고 권위의 의학 잡지인 서큘레이션 2009년 3월 3일 판에 커피 소비량과 중풍 발생간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이 실렸다. 그것도 무려 8만 3천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무려 24년간 전향적으로 관찰하여 나온 초대형 연구이니, 가히 블록 버스터 급 연구결과라 할 만하다.

이에 따르면 커피를 하루 4잔 이상 마시는 여성은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20%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고, 하루 한잔 마시는 여성도 뇌졸중이 12% 나 줄어 드는 것으로 나왔다. 그전에도 이와 유사한 결과들이 소규모 연구에서 발표 된 적이 있어 커피의 뇌졸중 예방 효과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으나, 이렇게 대규모 연구에서 확인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연구에서 이런 식으로 명확한 결론이 나면 이 결과를 뒤집을 만한 다른 연구들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이 내용은 거의 그대로 의학계의 정설이 되고 만다. 생각해 보라. 어느 누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커피와 뇌졸중의 관계를 다시 한번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연구 주제로 삼아 한번 더 연구 작업을 해 볼 엄두를 내겠는가. 사실 8만 명을 24년간 추적 해 본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하기 힘든 일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커피가 중풍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은 정설이라고 해도 될 듯 싶다.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커피가 한잔 더 마시고 싶어진다.

향긋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서 바야흐로 기분이 좋아지려는 순간, 논문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니 아뿔싸, 이것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는 것이 강조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결과가 과연 남성에도 똑 같이 적용될 수 있을까? 물론 그러리라 추측은 되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은 대충 적용될 수는 없는 법, 증거 위주의 의료를 강조하는 현대 의학에서는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낼 수는 없는 법이다. 갑자기 한숨이 나온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가 나올 때 까지는,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은 아직은 자제해야 하겠다. 대신 집사람에게 좋은 커피나 한 통 선물해야 하겠다. 그러고 커피에 관한 문헌이나 다시 한번 찾아 보아야 하겠다. 물론 커피 한잔 더 마신 후에.

2009년 3월 경북일보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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